제시가 본인에게 하는 말, 그리고 조니에게 하는 말. 우리 모두에게 건네는 말. 컴온, 컴온. 그냥 해요, 해요. 미래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우리는 아무도 알지 못하고, 그 일들이 우릴 덮칠 때 때론 절망하고, 슬프고, 또 어렵겠지만. 그래도 해요, 해요, 해요, 해요. 영화에서 하는 모든 질문들이 나에게 던져졌고, 그 질문들로 조금은 어린 마음이 되어가고, 다른 세상에 존재할 수많은 어린 마음들을 안아주는 사랑으로 채워졌다. 그런 온기가 나를 덮고, 데우다가, 결국 나를 울게 만드는 영화.
제시의 위태롭고 제멋대로인 모습에 얼굴이 찡그려지기도 하지만, 결국 그게 우리의 모습 아니었나? 자문하게 된다. 그 아이와 함께 성장하는 조니와 비브를 보며 단순히 아이를 일방향으로 양육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응석받이 제시. 자신이 고아인 역할 놀이를 하는 것도, 자신과 함께 있으며 전화만 하는 조니 옆을 갑자기 떠나버리고 화내는 것도, 사실 본인이 잊힐까 봐, 혼자될까 봐, 두려워 미리 그렇게 행동했던 게 아닐까? 그런데, 우리도 살면서 제시처럼 먼저 방어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게 있지 않은가? 거절당하는 게 점점 두려워지고 힘드니까.
그럼에도 우리에게 서로를 있는 그대로 안아주고, 함께 자라나가는 그 누군가가 있다면, 서로가 서로에게 그렇게 힘이 되어 준다면, 지구라는 시간의 강에 풍덩 뛰어들어 찰나의 순간들을 행복과 사랑과 경이로움과 슬픔과 아름다움을 겪는 이 반짝이는 삶을 좀 더 충실히 보낼 수 있게 되는 작은 기적이 있으니까. 결국은 찰나를 반짝이고 모두 다 잊어버리고, 모두 다 작별하게 되는 거지만, 그럼에도 그 잠깐의 순간들에 함께할 수 있다면. 삼촌이 자신과의 시간을 기억하지 못할까 봐 속상해하는 제시를 달래며 내가 다 기억할 거라 말하는 조니처럼.
질문하는 영화를 좋아한다. 답을 내려 놓은 채 나에게 교조적으로 훈계하거나, 그저 웃게 하거나, 그냥 울게 만드는 영화도 가끔은 보게 되지만, 함께 질문하고, 함께 답을 내려가는 과정에서 함께 웃고 우는 영화가 좋다. 그리고 아이들이 나오는 영화가 좋다. 아이들은 잠재된 가능성이고, 희망 그 자체니까. 그 희망을 가만히 보는 것. 그 아이들이 어른들의 답변에 본인들의 생각을 거침없이 하는 것. 나에겐 어떤 질문들이 남을까? 신형철은 인생의 역사에서 ‘인생은 질문하는 만큼만 살아’ 진다고 말했다. 나는 내게 어떤 질문들을 얼마나 던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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